지난 금요일 저녁 기도회 때 ‘신이 보낸 사람’이라는 북한의 지하교회와 관련된 영화를 관람했습니다. 그런데 영화 초반의 아주 잔인한 고문 장면을 본 몇몇 사람들이 힘들다고 호소하고 결국은 관람을 못했습니다. 일종의 ‘전이된 트라우마’ 때문일 것입니다.
지난 수요일의 진도 앞바다 여객선 침몰 사건 후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뉴스만 보면 눈물이 난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. 이것도 일종의 ‘집단 트라우마’라고 전문가들이 말합니다.
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이 집행되던 곳에 있던 사람들 중 일부는 예수님을 조롱하고, 일부는 욕을 하고 혹 일부는 회개하고, 심지어 로마의 백부장은 예수님이 죽으신 후 “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”고 고백합니다. 그런데 그 사람들 말고,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사람들, 눅23:49에 의하면 “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”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?
엠마오 마을로 가던 두 제자의 경우는 “슬픈 빛을 띠었고”(눅24:17), 여자들은 죽은 “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샀다”(눅16:1)고 성경은 기록합니다. 이것도 일종의 ‘영적 트라우마’로 누구의 희망으로 부활을 기대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.
그런데… ‘트라우마’라는 것이 좀 더 세심한 심리적인 분석과 대책이 필요하겠지만, 성경과 역사가 증거하기는 그 어떤 역사상의 트라우마도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앞에 그 힘을 잃었습니다. 주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.
북한의 공포정치에 고통당하는 우리 형제들도, 캄캄한 배에 갇혀 고통하는 아이들과, 그들의 공포와 고통을 ‘함께’ 겪는 우리 국민들도 2000년 전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된 소식을 듣고 일어나기를 바랍니다. “Peace be with you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” 이것이 부활하신 주님의 첫 인사입니다.
평강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이기는 예수부활의 선물입니다. 이 선물로 인하여 사랑하는 성도들의 삶에 스쳐간 수많은 인생의 아픔들과 고통들이 더 이상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, 성도들이 모든 트라우마에서 회복되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.
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이 배에 갇힌 생명들을 구하시며 고통하는 가족들과 온 국민들을 위로하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.

담임목사 변성모